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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음의 벽' 넘으려 유학결심   테너가수 임웅균④

 

  • 보기에는 무디고 우락부락한 것 같지만 사실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다. 부도가 나고 7개월 후 어머니가 뇌혈전으로 돌아가셨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성통곡을 했다. 졸업식날도 혼자 교문을 걸어나오며 엉엉 울었다. 초라한 군복차림에 아무도 오지 않는 쓸쓸한 졸업식. 수석졸업장을 받았지만 축하해줄 사람도 없었다.
  • 제대한 후 첫직장은 화곡고등학교 음악선생.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획기적인 실기시험방법을 개발했다. 매번 빵점을 받는 음치학생들을 위해 창작, 연주, 감상 중 자기가 잘하는 것을 선책하도록 한 것이다. 노래는 못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감상문을 써서 제출하고 기타를 잘 치는 학생은 기타를 들고 나와 시험을 치렀다.
  • 꽤 보람있는 생활이었지만 나는 이미 유락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간판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당시 나는 높은 도를 잘내지 못했다. 고음의 벽을 뚫고 음악적 완성을 이루려면 이탈리아로 가야 했다. 테너에게 고음은 생명과도 같다. 때로 테너는 고음을 위해 생명을 걸기도 한다. 세계적인 테너 리차드 더커는 "당신은 높은 도를 내면 죽는다"는 의사의 경고로 고음을 포기했고, 우리나라의 한 원로테너는 결혼식작에서 축가를 부른 후 돌아가셨다.
  • 나도 노래를 부르다 죽을 뻔한 기억이 몇 번있다. 집이망하고 몸이 약해졌을 때였다. 채플시간에 찬송 특송을 했다. "주여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는 곡이었는데 높은 라 정도여서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라음을 내고 돌아서는 순간 뇌혈관 쪽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숨이 콱 막히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 그리고 얼마후 김자경 오페라단이 공연한 심청전을 연습하면서 다시 한번 그 증세가 재발했다. 농부가를 멋들어지게 부르다 숨이 콱 막혀버린 것이다.
  • 의학용어로는 부정맥현상. 한동안은 노래 부르는 것 자체가 겁이 났다. 유학을 가려면 해결해야 할 것이 있었다. 우선 비행기값이라도 마련해야 했다. 또 함께 떠날 아내가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요. 여자한테 원하는 거 없습니다. 그저 제가 키가 작으니까 여자가 키가 크고 이왕이면 예뻤으면 하고요, 제가 피아노를 못치니까 반주를 해줄수 있는 여자였으면 좋겠습니다"
  • 가난한 학교선생치고는 과한 요구였지만 그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반석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반주를 하던 최영인을 아내로 맞게 된 것이다. 키는 1m 73.
  • 3년의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유학준비를 했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없었다. 궁리 끝에 유관순 기념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당시만 해도 독창회는 자기 돈 쏟아부어가면 하는 게 관례였지만 나는 3백 70만원을 벌었다. 그돈이 내 유학자금이었다. 급하게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도 생략한채 이탈리아로 떠났다. 아내에게는 "우린 지금 이탈리아로 신혼여행 가는 거야"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도착한 첫날부터 이미 신혼여행은 끝났다. 그곳에는 기나긴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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