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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유학생활 '큰 재산"   테너가수 임웅균⑭

  • 높은 곳에 올라갈 때마다 우리 부부가 꼭 하던 말이있었다. '저렇게 많은 집 가운데 왜 우리 이름으로 된집은 없을까' 95년까지도 나는 월세집에 살고 있었다. 물론 예전에 비하면 먹고 살기가 나아졌지만 어쨌든 집은 없었다. 그러다 몇 년 동안 모아놓은 돈과 대출금 1억원을 합쳐 드디어 아파트를 산 것이 지난 해. 결혼 14년만에 장만한 집이다.
  • 집 구입자금은 순수하게 공연을 통해 벌어들였다. 몇년 전부터 나는 공연 때마다 한국 최고 수준의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다. 공연은 거의 공짜에 가깝게 출연하고 대신 레슨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풍토가 싫다.그래서 레슨은 일절 하지 않고 내 노래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 대신 어린이와 관계된 일이라면 돈은 상관없이 발벗고 나선다. 옛날엔 '누가누가 잘하나'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고 지금도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에 기쁘게 참여하곤 한다. 어린이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두 딸의 아버지이기 때문일 것이다. '딸딸이 아빠'가 되면서 나는 철저한 폐미니스트로 변했다. 아이들에게 여자도 무엇이든 최고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3학년인 세희는 여자대통령이 꿈이란다. 1학년 세은이는 그림을 제법 잘 그리는데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그림공부에 물두해 피카소처럼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 두 딸과 아내는 내 음악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이다. 아이들은 국내공연이든 해외공연이든 꼭 따라와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지켜봐준다. 아내는 아예 뮤직코치 역할을 맡고 있다. 공연 때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 선곡을 해준다. LA '열린 음악회'때 '타향살이'를 부르게 한 것도, 광주에서 곧 있을 '5.18기념음악회'에 '친구여'나 '파란마음하얀마음'을 선곡해준 사람도 아내다.
  • 연주를 마치고 나면 나는 먼저 아내의 눈치를 살핀다. 분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환하게 웃으면 내 노래가 아내의 마음에 들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아내의 얼굴이 굳어져 있으면 그날 내 노래는 신통치 않은 것이다. 홍콩공연 때는 아예 나와 얘기도 하지 않으려 했다. 아내는 '방송연주를 너무 많이 해 창법이 변했다.'고 나무랐고 나는 '잘했는데 왜 그러느냐'고 반박했다. 아내는 화가 나 계단을 뛰어내려가다 굴러떨어지기까지 했다.
  • 재작년 우리 부부는 둘이서 오붓하게 이탈리아로 '한풀이'여행을 다녀왔다. 아내의 소원은 단골이던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사 차에 싣는 것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좋은 차를 빌려서 아내의 소원을 풀어줬다. '물만 먹고 왔던' 베네치아에서는 먹고 싶은 음식을 실컷 먹었다.
  • 그 여행에서 우리 부부는 참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가난했던 유학생활이 우리에게 큰 재산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가난해진 뒤에야 나는 음악에 대해 절실해졌고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가난한 자여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진실이다.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성경구절이 하나 있다. '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 43장 21절). 때가 되면 나는 교수직도, 직업성악가로서의 길도 버릴 작정이다. 내 인생의 마지막 꿈은 찬양사로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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